화기애애한 '9연승' 대한항공…비결은 조토 감독의 '신뢰'(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그날 경기 끝나고 선수들에게 그랬죠. 고개 숙이고 다니지 말자고. 시즌은 기니까, 배구 생각 말고 푹 쉬고 돌아와서 다시 잘해보자고요."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고공비행을 이끄는 '캡틴' 정지석의 리더십이 빛난 순간이었다.
개막 후 2번째 경기인 KB손해보험전 패배로 자칫 가라앉을 수 있었던 팀 분위기를 다잡은 것은 주장의 따뜻하고도 단호한 한마디였다.
대한항공은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5-2026 V리그 남자부 방문 경기에서 우리카드를 세트 점수 3-1로 제압했다.
이날 승리로 대한항공은 파죽의 9연승을 질주하며 남자부 구단 중 가장 먼저 10승(1패) 고지를 밟았다.
2라운드 6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리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경기 후 만난 정지석은 "장충체육관에 오면 매번 힘든 경기를 했다"면서 "오늘 승점 3을 따내는 것과 동시에 연승을 이어가서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정지석은 블로킹 4개를 포함해 19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특히 상대 주포 하파엘 아라우조(등록명 아라우조)의 공격을 결정적인 순간마다 가로막으며 흐름을 가져왔다.
(서울=연합뉴스) 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대한항공의 경기. 대한항공 정지석이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 2025.12.4[ 한국배구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
정지석은 "분석을 많이 했다. 오늘 아라우조의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며 "미들 블로커들이 워낙 잘해주니까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이라며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이날 승리의 숨은 주역은 웜업존에서 출발해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김규민과 정한용이었다.
교체로 코트를 밟은 김규민은 3득점, 정한용은 9득점을 올리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정한용은 "프로 와서 처음으로 라운드 전승을 해봤다"며 웃었고, 김규민은 "몸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팀 승리에 도움이 돼 기쁘다. 밖에서도 언제든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상승세에는 세계적인 명장 헤난 달 조토 감독의 '믿음 리더십'이 깔려있다.
선수들은 실수해도 벤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플레이한다.
김규민은 "감독님은 말하지 않아도 믿는다는 걸 눈빛으로 보여주신다"며 "불안함보다는 내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뛴다"고 말했다.
정지석 역시 "실수했을 때 벤치에서 '레이저'가 나오면 위축되기 마련인데, 감독님은 오히려 '더 강하게 가야 한다'고 피드백을 주신다"며 "눈치 안 보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게 선수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라고 강조했다.
정한용도 "작년보다 실수했을 때 눈치를 덜 보는 느낌"이라며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기고, 실수해도 다음 플레이를 과감하게 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팀 분위기가 좋다 보니 서로에 대한 칭찬도 끊이지 않았다.
김규민과 정한용은 주장 정지석의 달라진 리더십을 치켜세웠다.
김규민은 "지석이가 어릴 때부터 봐서 마냥 아기 같았는데, 올해는 주장으로서 무게감이 느껴진다"며 "코트 안에서 목소리도 커지고 액션도 커졌다. 한선수 형이 팀을 잘 만들었고, 지석이가 잘 물려받았다"고 평가했다.
이에 정지석은 "배구는 팀 스포츠다. 규민이 형 같은 베테랑들이 분위기를 살려주니까 제가 주도하지 않아도 된다"며 "저는 주장 완장만 찼을 뿐, 형들이 다 해준다"며 손사래를 쳤다.
2라운드 전승을 이끈 주역들이지만, 라운드 MVP를 묻는 말에는 약속이나 한 듯 한 동료의 이름을 외쳤다.
바로 강서브로 상대 코트를 폭격하고 있는 외국인 선수 카일 러셀(등록명 러셀)이다.
정지석은 "러셀의 서브는 말이 안 된다. 팀이 힘들 때 서브로 분위기를 바꿔주니 우리가 편하게 경기한다"며 "러셀이 안 받으면 말이 나올 것 같다"고 강력히 추천했다.
정한용 역시 "지석이 형에게는 미안해도, 서브 임팩트가 너무 강하다"며 러셀의 수상을 지지했다.
동료들의 만장일치 추천에 정지석은 "그래도 저를 뽑아주신다면 감사히 받겠다"며 너스레를 떨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