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13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FC서울 김기동 감독이 이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있다. 2025.2.13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연고 이전이 아닌 연고 복귀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프로축구 FC서울을 이끄는 김기동 감독은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미디어데이에서 FC안양과 유병훈 안양 감독을 향해 이같이 말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서울과 안양은 '연고지'로 얽힌, 다소 예민한 관계다.
서울은 1983년 창단한 '럭키금성 황소'를 전신으로 한다.
럭키금성은 충청 광역권을 기반으로 활동하긴 했으나 이 시절은 사실상 연고나 지역 기반이 무의미할 정도로 전국을 떠돌며 경기를 치르던 시기였다.
이후 1990년 시(市) 연고지 정책이 시행되며 럭키금성의 연고지는 서울로 확정됐고, 이듬해인 1991년부터는 LG 치타스라는 새 이름을 내걸었다.
동대문운동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LG 치타스는 1995년 서울 공동화(空洞化) 정책에 따라 서울을 떠나 1996년부터 안양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8년간 안양 생활을 하던 안양 LG는 2002 월드컵 이후 비어 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입성해 2004년 연고지를 서울로 다시 바꾸었고 FC서울이라는 새 구단 간판을 달았다.
이 과정을 두고 유병훈 감독이 "2004년 2월 2일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 이전하며 시민과 팬분들의 아픔과 분노를 자아냈다"고 하자 김기동 감독이 "연고 복귀"라고 응수한 것이다.
서울 구단은 원래 연고지가 서울이었던 LG 치타스가 타의에 따른 안양 생활을 끝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연고 복귀"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본다.
구단 관계자는 20일 연합뉴스에 "1995년 당시 우리는 끝까지 서울에 남고 싶었다"며 "당시 '도쿄 공동화' 정책을 펼치던 일본프로축구 J리그를 따라 한 축구계 분위기와 문민정부의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른 무언의 압박에 쫓겨나듯이 서울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구단이 처음부터 안양을 떠나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안양시의 태도와 '라이벌' 수원 삼성과 점점 벌어지는 격차로 서울 복귀를 추진했다고 한다.
구단 측은 "안양시가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야간 경기를 위한 조명(스탠드)도 제대로 지원이 안 됐다. 또 당시 라이벌이던 수원 삼성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기반으로 계속 팬을 확대하는데, 안양 LG는 정체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어 "K리그 구성원을 설득했고, 이사회도 승인했다"며 "구단이 원래 연고지를 찾아갔을 뿐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라고 '서울 연고 복귀'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연고 복귀'라는 서울의 주장에 안양 팬은 결국 복귀도 이전인데, '이전이 아닌 복귀'라며 표현 문제로 끌고 가는 건 말꼬리를 잡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구단이 팬을 버리고 떠났다'는 본질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안양 LG를 응원하다가 '아픔'을 겪고 이제는 FC 안양 서포터스를 이끄는 송영진 회장은 "결국 복귀도 이전이다. 중요한 건 '옮겼다', '떠났다'는 행위 그 자체"라며 "서울이 '연고 복귀'라고 주장하며 행정적인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하는데, 그런 왜곡된 역사가 기록돼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 회장이 기억하는 안양 LG는 "안양시민축구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마케팅하던 구단"이다.
그는 "안양 LG는 안양 시민에게 '우리 팀'이라고 다가온 구단이고, 서울 이전설이 나올 때마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던 구단이며, 계속 안양에 있을 거라고 안심시켰던 구단이었다"고 회상했다.
"연고 이전이 확정되기 불과 며칠 전에야 뉴스를 통해 구단이 연고이전의향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송 회장은 "사전 안내라는 게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팬이 이해할 만한 설명 과정도 없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안양 LG를 응원하던 팬들의 분노와 아픔만 남았다는 설명이다.
배신감, 슬픔 등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던 송 회장은 "(팬과 구단의 관계는) 연인 간 사랑보다는 부모가 자식에게 쏟은 사랑으로 비유하는 게 맞을 것이다. 구단은 팬의 대가 없는 사랑을 버리고 떠난 것"이라며 "지금은 분노의 감정은 없다. 다만 그들 행위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LG 치타스가 안양으로 옮겨간 1995∼1996년 당시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행정을 책임졌던 김기복 전 연맹 사무총장은 "1990년대 초반엔 연고지라는 개념이 확고하지 않았으나 이후 연고지 팬 밀착 정책을 펼쳤다"며 "안양 LG도 안양 시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안양의 색깔을 가지려 했다"고 회고했다.
안양 LG의 서울 복귀와 이에 따른 안양 축구 팬의 분노에 대해선 "당시 구단이 충분히 대화를 나눴어야 했지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빨리 연고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돼 안양 팬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며 "팬을 이해시키는 게 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서울 측 역시 "당시 구단의 처신에 대해 잘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서울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 복귀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충분히 여론을 살피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안양 LG가 서울로 복귀했든 이전했든,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안양 팬들은 여전히 20년 전 일을 기억하고 있다.
제집을 다시 찾아갔을 뿐이라는 서울과, 떠난 건 떠난 것이라는 팬.
그들만의 복잡한 속사정은 2025시즌 K리그1에 또 다른 흥미로운 서사를 예고했다.
축구 팬의 관심을 끌어모을 서울과 안양의 역대 첫 리그 맞대결은 오는 22일 오후 4시 30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