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김대유(KIA 타이거즈)의 초구 스트라이크를 지켜본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2구째 높은 커브에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헛스윙했다.
'콘택트의 달인' 이정후답지 않은 스윙은 연막작전에 불과했다.
볼 카운트 2볼 2스트라이크에서 6구째 슬라이더가 한복판에 몰리자 큰 스윙으로 공을 강타했다.
포물선보다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보인 타구는 오른쪽 관중석에 안착했고, 개인 통산 두 번째 끝내기 홈런을 친 이정후는 무심한 듯 배트를 던지고 베이스를 돌아 동료의 축하를 받으며 홈에 안착했다.
이정후는 1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IA와 홈 경기에서 0-0으로 맞선 연장 10회 말 1사 1루에서 끝내기 2점 홈런을 터트려 팀의 2-0 승리에 앞장섰다.
주장 이정후의 홈런에 키움은 KIA와 3연전을 모두 쓸어 담고 4연승을 달렸다.
이날 경기 전까지 이정후의 타율은 0.237에 그쳤고, 이날도 끝내기 홈런이 나오기 전까지 네 차례 타석에서 3타수 무안타에 볼넷 1개만을 얻었다.
좀처럼 오르지 않아 '이정후답지 않은' 그의 타율은 0.238(42타수 10안타)이다.
그러나 경기 후 만난 이정후는 "타율은 운이다. 지금 BABIP(인플레이 타율)도 낮고, 타구 스피드는 작년보다 좋은데 타율이 안 따라오는 건 결국 운이 없어서"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정후의 타격 목표는 안타나 홈런이 아니라 강한 타구를 만드는 것이다.
일단 좋은 타구를 만들고, 그 이후는 운에 맡긴다.
이정후는 "그래도 지금 볼넷이 많이 나오니까 최대한 팀 승리를 위해 플레이하고 싶다. (타율 같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억지로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걸 계속하겠다. 타율은 언젠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 이정후는 외로운 존재다.
2021년까지는 타순 바로 뒤에 박병호(kt wiz)가 있었고, 작년에는 야시엘 푸이그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새 시즌 4번 타자로 낙점받은 애디슨 러셀은 아직 폭발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다가 허리 통증으로 최근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정후는 "투수들이 어렵게 승부하다 보니 감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이런 건 처음"이라고 인정했다.
지금은 억지로 치는 것보다 이럴 때일수록 볼을 골라서 볼넷으로 나가는 게 팀 승리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타석에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이정후의 타격 침묵과 함께 키움은 이번 주 초까지 5연패에 빠졌다가 최근 4연승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정후는 "저희 팀 루틴이라고 하면 좀 이상한데, 매년 초반 이렇게 한 번씩 5연패를 하더라"며 "우리 팀 장점이 연패나 연승 때나 분위기가 같다. 이렇게 한 번 분위기를 타면 젊은 팀이라 계속 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자신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이정후의 저조한 타격 성적에 입버릇처럼 "이정후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이정후는 "저 스스로는 걱정이 된다"고 인정하면서도 "아직 초반이고, 130경기 정도 남았으니까 좋은 모습 보여드릴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