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유럽 주요 리그와 선수들이 연합해 '가혹한 일정 문제'로 대치하던 국제축구연맹(FIFA)을 유럽연합(EU)에 직접 신고했다.
A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의 유럽 지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독일 분데스리가·이탈리아 세리에 A·프랑스 리그1·스페인 프리메라리가(라리가)는 1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으로 신고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FIFA와 이들 연합 사이 실제 법적 공방이 벌어질지는 신고서를 접수한 EU 집행위원회 결정에 달렸다. 집행위가 신고 절차·내용 등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면 공식적으로 소송이 개시된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기획한 국제대회 일정을 리그, 선수들에게 강요하는 '반경쟁적 행위'(anti-competitive conduct)로 규정, EU 경쟁법상 지배력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각종 국제대회를 통한 상업적 이익을 우선한 나머지 이해당사자인 리그, 선수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 빡빡한 일정을 강제하는 FIFA의 행정이 곧 독점적 지위의 남용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내년 36개 팀이 참가하는 '확장판' FIFA 클럽월드컵, 48개 참가국으로 확대 개최되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등으로 피로 누적이 심해지고 부상 위험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률 대리인 마크 잉글리시는 "FIFA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원하는 게 아니다. 공정하고 포용적 의사결정 구조를 원한다"며 EU 집행위가 경쟁법 위반 혐의를 받는 FIFA의 행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비에르 테바스 라리가 회장은 "축구 행정 기관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굉장히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유럽과 세계 축구를 위해 아주 중요한 날"이라고 강조했다.
EPL 소속으로 국제 문제를 담당하는 마티외 모뤼이 디렉터는 "우리가 공동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적 조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밝혔다.
움베르토 칼카그노 이탈리아 프로축구선수협회장도 "우리에게는 (FIFA의 국제대회 일정이) 축구가 스스로를 잡아먹는 상황처럼 느껴진다"며 "선수들도 이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고 말했다.
FIFA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7월 리그·선수 연합이 처음으로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을 때 FIFA 측은 현재 일정은 모든 대륙 대표단이 참가한 이사회에서 승인한 것이며 포괄적인 협의를 거쳤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수입을 고려해 프리시즌 투어나 친선전으로 비시즌 일정을 가득 채우는 유럽 주요 리그의 행태가 일정 문제를 심화하는 요인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대치 구도인 FIFpro와 FIFA 측이 근거로 제시한 자료의 결론도 상반된다.
지난달 초 FIFpro가 낸 보고서를 보면 월드컵과 클럽 월드컵 확대 개최로 2025∼2026년 사이 일부 선수는 최대 8차례 국제 경기를 더 치러야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훌리안 알바레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2023-2024시즌 75경기를 뛰었고, 출전 명단에 포함돼 경기장에 나선 횟수는 83회나 된다. FIFpro 계산대로라면 그는 한 시즌 80경기 이상 나서야 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수비수 크리스티안 로메로(토트넘)는 대표팀·소속팀 경기를 모두 소화하려 16만2천978㎞를 이동해야 했다. 국제 대회 규모 확대로 로메로의 이동 거리도 더 늘어나게 된다.
반면 FIFA 산하 연구기관인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는 지난 8월 2012-2013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연간 4천500분 이상 소화한 선수 비율은 0.88%라고 발표했다.
이 통계대로라면 과도한 일정 부담을 호소할 만큼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각국의 소수 스타 플레이어에 국한된 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