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북한 여자 축구가 17세 이하(U-17)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북한은 4일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의 에스타디오 올림피코 펠릭스 산체스에서 열린 2024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과 전·후반 90분 동안 1-1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했다.
북한은 2016년 요르단 대회 이후 8년 만에 통산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더불어 2010년 트리니다드토바고 대회 3위 결정전에서의 0-1 패배, 2018년 우루과이 대회 8강전 승부차기 패배 등 스페인과 악연도 끊었다.
스페인은 2018년, 2022년에 이어 대회 3연패에 도전했으나 북한에 무릎을 꿇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준결승에서 각각 미국을 1-0으로, 잉글랜드를 3-0으로 꺾은 북한과 스페인의 결승전은 스페인이 좀 더 주도권을 쥐고 끌고 가는 형국이었다.
북한은 시작부터 위기를 맞았다.
전반 2분 스페인의 역습 상황에서 셀리아 세구라에게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내주고 오른발 슈팅을 허용했으나 골키퍼 박주경이 슈팅 각도를 좁혀 선방해냈다.
전반 42분에는 공중 볼을 처리하려던 박주경과 북한 리국향, 스페인의 알바 세라토가 겹치며 잠시 혼전이 벌어졌고, 빈 골대로 흐른 공을 북한 수비가 다급하게 걷어내 가까스로 실점을 막았다.
북한은 후반 16분 스페인에 선제골을 내줬다.
왼쪽 측면에서 파우 코멘다도르가 낮게 깐 크로스를 찔러 넣자 반대쪽 골대로 쇄도한 세구라가 왼발로 가볍게 밀어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북한은 곧바로 만회 골을 터뜨렸다. 이 장면에서 세 차례 득점 세리머니를 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후반 19분 로운향의 긴 패스로 한 번에 스페인 수비 라인을 허물었고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질주한 전일청이 골키퍼를 제친 뒤 오른발 슈팅으로 골대를 갈라 환호했다.
직후 심판진은 비디오판독(VAR)으로 전일청의 오프사이드 여부를 따져봤는데 전일청의 발끝이 미세한 차이로 스페인 수비보다 뒤에 위치한 것으로 판정돼 북한은 그제야 마음껏 기쁨을 누렸다.
그러자 스페인 벤치는 이전 볼 경합 상황에서 북한의 파울 여부를 놓고 VAR을 신청했다. 심판진은 이 장면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고 북한의 득점을 인정했고 북한은 하이파이브하며 세 번째 미소를 지었다.
북한은 후반 30분 세라토에게 오른발 슈팅을 허용했으나 박주경의 신들린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추가 득점에 실패한 양 팀은 승부차기로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렸다.
양 팀의 두 번째 키커인 이리스 산티아고와 정복영의 슛을 각 팀 골키퍼가 나란히 막아내 선방 대결을 펼쳤다.
세 번째 키커 코멘다도르의 슛이 골대 왼쪽으로 흘러 나간 반면, 로운향은 깔끔하게 성공해 희비가 갈렸다.
이후 실축 없이 깔끔하게 골망을 흔든 북한은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스페인을 꺾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경기 직후 FIFA 인터뷰에서 박주경은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은 원수께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알려 드리고 싶다. 행복하고 기뻐서 눈물밖에 안 난다"고 소감을 말했다.
송성권 북한 대표팀 감독은 "유럽 최강팀 스페인을 통쾌하게 이겼다. 아시아 최강팀이 세계 최강팀이 된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지난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여자 아시안컵 우승팀 북한은 월드컵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북한은 지난 9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도 8년 만에 챔피언 자리를 탈환해 여자 축구 강국의 위세를 실감케 했다.
결승전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는 전일청이 대회 최우수선수(MVP)상에 해당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전일청은 U-17 아시안컵에서 6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한 데 이어 월드컵에서는 골든볼을 품에 안아 북한 대표팀 에이스로 이름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