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또 선수 말만 믿다가 11년 만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고 망신을 자초했다.
LG 구단은 인터넷 불법 도박 혐의에 연루된 소속 외야수 이천웅(34)이 12일 뒤늦게 혐의를 인정했다고 14일 발표했다.
야구계에 따르면, 이천웅은 제삼자를 거쳐 온라인 불법 도박을 한 혐의로 조만간 검찰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도박에 들어간 정확한 돈의 액수와 도박 양태 등은 수사로 드러날 참이다.
LG 구단의 사태 대처 능력은 경기 조작에 가담한 투수 박현준 사건이 벌어진 11년 전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선수의 말만 믿고 '무죄 추정'만 강조하다가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나서야 뒤늦게 수사에 협조하는 무능한 모습을 또 노출했다.
당시 LG 단장이 일본 오키나와현 훈련하던 박현준에게 숙소 로비에서 직접 경기 조작에 가담했는지를 묻고, 박현준이 그러지 않았다고 답하는 장면이 TV 스포츠 뉴스에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훗날 박현준의 범행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 장면은 웃지 못할 촌극으로 남았다.
박현준은 스프링캠프 훈련 중 귀국해 검찰에 출두했고, 브로커의 꾐에 빠져 '첫 이닝 볼넷'과 같은 경기 조작을 하고 사례금을 챙긴 혐의로 KBO리그에서 영구 제명됐다.
이번 사태도 그때와 흡사하다.
수도권 구단의 한 선수가 인터넷 불법 도박에 연루됐다는 제보가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날아들었다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건 정규리그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이었다.
혐의를 받는 유력 선수가 LG 이천웅이라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런데도 LG는 냉철한 자체 조사보다는 '그런 적이 없다'는 선수의 말만 신뢰해 이천웅을 1군 엔트리에서 빼지 않다가 KBO 사무국이 검찰에 수사 의뢰한 6일에야 부상을 이유로 내세워 그를 엔트리에서 제외했다.
이후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이천웅의 자백을 받아냈다는 게 LG 구단의 설명이다.
바꿔 말하면 KBO 사무국이 검찰 수사 의뢰라는 강수를 빼 들지 않았다면, 계좌 추적과 같은 강제력 있는 수사권이 KBO 사무국과 구단에 없다는 점을 들어 진실 규명이 차일피일 미뤄질 수 있었다는 점을 뜻한다.
성인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LG 구단에 물을 수는 없다. 구단은 프로답게 선수들이 팬들의 눈높이에 맞게 행동하길 바라고, 선수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함으로써 신뢰가 쌓인다.
다만, 박현준의 일탈 행위로 크게 홍역을 치른 LG가 11년 만에 비슷한 일을 또 겪고도 사태 조기 수습에 미적거렸다는 사실은 구단에 위기 대응 시스템이 아예 없거나 크게 구멍이 뚫렸다는 점을 알려준다.
과연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정상 탈환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도전하는 팀인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단 고위층과 선수단의 현실 인식이 안이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