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6년 만에 재개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이 '초호화 군단'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은 바로 마운드였다.
일본은 2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대회 결승전에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도고 쇼세이(요미우리 자이언츠)-다카하시 히로토(주니치 드래곤스)-이토 히로미(니폰햄 파이터스)-오타 다이세이(요미우리)-다루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 7명이 이어 던지며 미국의 강타선을 산발 9안타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일본 투수들은 트레이 터너와 카일 슈워버(이상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각각 솔로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중요 고비마다 미국 타자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일본 투수들의 평균 스피드였다.
7명의 투수 모두 패스트볼 구속이 150㎞를 웃돌았다.
다루빗슈를 제외하면 모두 20대인 이들은 맞대결을 펼친 미국 투수들보다 오히려 더욱 빠른 공을 던지며 마운드에서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
반면 미국의 패인도 투수력이다.
미국은 무키 베츠(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폴 골드슈미트, 놀런 에러나도(이상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타자들은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했지만, 마운드에서는 최고의 선수들을 모으지 못했다.
만약 미국이 저스틴 벌랜더와 맥스 셔저(이상 뉴욕 메츠), 셰인 비버(클리블랜드 가디언스) 등 각 팀 에이스를 대거 결승전에 투입했다면 일본이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그렇다.
홈런타자 9명을 모아도 '선동열' 같은 투수 한 명을 이기지 못하는 게임이다.
문제는 한국 야구다.
1·2회 WBC에서는 일본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4강과 준우승을 차지했던 한국야구는 이후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예전 한국 야구의 최대 강점은 안정된 마운드와 끈끈한 수비야구였다.
한국은 제1회 WBC에서 팀 평균자책점(ERA) 2.00으로 참가국 중 1위를 차지했고, 2회 대회에서는 팀 ERA 3.00으로 4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WBC에서 한국은 평균 ERA 7.55를 기록, 전체 20개국 16위로 밀리고 말았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수치다.
한국은 역대 WBC에서 일본과 9차례 만나 4승 5패를 기록했다.
한국이 승리한 4경기는 모두 투수진이 일본 타선을 2점 이내로 틀어막은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국 투수들은 일본 투수들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일본전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해 콜드게임패의 수모를 막은 뒤 곧바로 체코전에 선발 등판한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정도만 제 몫을 했을 뿐 나머지는 실망스러웠다.
과거 국내 지도자들이 일본 투수들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는 뛰어난 제구력이었다.
공이 빠른 것보다 구석구석 정확하게 던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 투수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스피드 혁명'의 결과물이었다.
웬만한 일본 투수는 모두 150㎞를 가볍게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렸다.
미국 메이저리그도 쿠바 망명 투수 어롤디스 채프먼(캔자스시티 로열스)이 데뷔한 2010년쯤에는 시속 100마일(약 161㎞)을 던지는 투수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지난 10여년간 미국과 일본이 마운드에서 '스피드 혁명'을 일으키는 사이 '우물 안 개구리' 한국 야구만 정체되고 있었다.
리그 평균 구속이 아직도 시속 140㎞대 초반에 머무는 KBO리그는 고졸 신인 투수가 입단하면 변화구 그립부터 가르치는 등 잔기술 습득에만 매달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잔기술을 가르치면 당장 써먹기는 좋을지 몰라도 투수가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힘부터 기르는 게 모든 스포츠의 기본 이론이다.
충분히 힘을 키우고 어깨를 강화한 이후에 기술을 습득해도 절대 늦지 않다.
KBO도 국제 행사 유치 등 '보여주기' 행정에만 매달리지 말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어린 투수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정책 수립에도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