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타격 슬럼프와 팀 성적 부진이 겹친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이정후는 현재의 감정을 "이제 힘들다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표현한다.
2017년 프로에 데뷔한 이래 '천재 타자' 소리만 듣다가 이번 시즌 개막 후 2할대 초반에서 타율에 벗어나지 못하는 그는 조금씩 긴 잠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후는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방문 경기에 1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를 치고 타점 2개와 볼넷 1개를 수확했다. 득점도 2개 올렸다.
이정후가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 경기를 펼친 건 지난 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 이후 7경기 만이다.
이정후는 11-1로 승리한 뒤 "어제 경기는 오랜만에 밀어서 힘을 보탠 타구가 나왔다. 잡히긴 했어도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타석에서 결과가 잘 나와서 앞으로 좋아질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안타 2개를 쳤어도 이정후의 시즌 타율은 여전히 0.231(121타수 28안타)에 머무른다.
아무리 타구 스피드가 작년과 큰 차이가 없고, 운이 따르지 않아 타구가 잡히더라도 이정후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성적이다.
그는 "생각한 것보다 (슬럼프가) 길어져 의식은 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고 앞으로 해야 할 경기가 많아서 결과가 나오면 금방 올라갈 거라 생각한다"고 바랐다.
최근 이정후는 경기 전 훈련 루틴을 조금씩 바꾸는 등 변화하고 있다.
야구 대표팀 선배이자 지난 시즌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구자욱(삼성 라이온즈)의 조언 덕분이다.
삼성을 대표하는 타자인 구자욱은 2022시즌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99경기 타율 0.293, 5홈런, 38타점으로 데뷔 이래 가장 저조한 성적을 냈다.
이정후는 "어느 순간 야구가 안 된다는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체념한 상황에서 (구)자욱이 형과 식사했다. 제가 '작년에 한 것과 똑같이 하는데 올해는 안 된다'고 했더니 '작년에 잘했다고 해서 작년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몸 상태와 밸런스가 다를 텐데 자꾸 작년 생각만 하면 시즌이 끝난다'고 하더라. 그 말이 가장 와닿았다"고 했다.
구자욱이 지난해 직접 겪고 고민했던 걸 이정후에게 그대로 들려준 것이다.
이정후는 "그 말을 듣고 훈련 방법도 조금 바꿨다"고 공개했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이정후는 타격 자세를 수정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기에 메이저리그 투수의 강속구에 대처하기 위해 스윙을 간결하게 바꿨다.
그 스윙으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정작 KBO리그에서 고전하자 마음고생이 심했다.
주변에서 '타격 자세를 수정한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도 그의 마음에 짐이 됐다.
최근 다시 예전 타격 자세로 돌아가고 있다고 밝힌 이정후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성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선수라 조급해지더라"면서 "가능하면 편하게 치려고 생각하니 예전 자세로 돌아가더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행착오에서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십수 년 동안 해왔던 타격 자세가 있는데, 몇 달 연습한 (새로운) 타격 자세가 몸에 밸 정도니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이정후는 "기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고, 원래 했던 타격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콘택트의 달인'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올해 헛스윙이 늘어난 것도 "타격 자세를 수정하면 시선도 조금씩 달라진다. 원래 시선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 헛스윙이 늘어난 것이니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한다"고 자신했다.
이정후는 자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홍원기 감독과 동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슬럼프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친다.
"2군에 내려가도 할 말이 없는데 감독님께서 더 믿음을 주시고 편하게 치라고 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한 이정후는 "동료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줄 거라고 말만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좋은 모습 보여준다고 약속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