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8년 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제임스 프랜시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한 미군 구출 부대의 여정을 그린 영화다.
전쟁 영화로는 불후의 명작이라 2004년에 태어난 LG 트윈스 '잠수함 신인 투수' 박명근도 그 내용을 알고 있을 정도다.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가 왼손 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인 체인지업을 무사히 장착하고 LG 마운드 허리를 든든하게 지탱하는 박명근은 "저 한 명의 체인지업을 위해 여러분이 도움 주셨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명근은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누구 덕분에 체인지업을 잘 던지게 됐는지 뽑기 애매하다. (경헌호, 김경태) 두 분의 투수 코치님한테 스프링캠프에서 많이 배우고, (동료 투수) 형들한테도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한 사람만 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입단한 신인 투수 박명근은 지난 2월 애리조나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공항 인터뷰에서 "체인지업을 다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성공적으로 체인지업을 장착한 뒤 1군에서 좌타자와 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상대하는 박명근은 14경기에서 1승 1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55로 활약 중이다.
마무리 고우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정우영과 이정용 등 핵심 불펜 투수가 부진한 가운데 보여준 활약이라 LG에는 더욱 반갑다.
특히 지난 9일 잠실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좌타자 이정후를 승부처에서 잡아내는 담대한 모습을 보여줬다.
4-4 동점에서 9회 마운드에 오른 박명근은 2사 1, 2루 위기에서 직전 타석 2타점 2루타를 친 이정후와 마주했다.
박명근은 초구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연달아 체인지업 2개를 던져 1볼 2스트라이크로 유리한 카운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직구로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고, 좌익수 뜬공으로 이정후를 돌려세우는 데 성공했다.
박명근은 "여기서 무조건 승부를 걸어 실점을 막겠다고 생각했다. 타자 이름 안 보고, 포수 박동원 선배 리드 믿고 제 공을 던진 덕분"이라고 했다.
박명근이 9회를 막아준 덕분에 LG는 연장으로 건너갈 수 있었고, 연장 10회 터진 신민재의 끝내기 안타로 5-4 승리를 따냈다.
사실 시즌 초반만 해도 박명근은 좌타자에게 약점을 보였다.
4월 16일까지 박명근의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167에 그쳤지만, 좌타자를 상대로는 피안타율 0.375로 고전했다.
그러나 체인지업의 완성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좌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도 생겼다.
최근 8경기에서 박명근은 좌타자를 상대로 단 1개의 안타만 내주고 피안타율을 0.143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박명근은 "어떤 식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타자에게 어떻게 던지면 좋을지 고민하다 보니 좋아진 것 같다. 원래는 움직임이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직구와 비교해) 속도 차이도 나고 각 폭도 많이 생기다 보니까 타자를 속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LG는 시속 140㎞ 중후반 직구를 던지는 고속 사이드암 박명근을 향후 선발 후보로 생각한다.
염경엽 LG 감독은 "팔로만 던지는 투수는 체력이 쉽게 떨어지고 구속도 떨어진다. 그렇지만 박명근은 탄탄한 하체를 이용해 온몸으로 던지는 투수라 구속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선발로 키워도 좋을 선수"라고 평가했다.
박명근은 "당장 선발 욕심은 없어도, 팀이 저를 선발 투수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다"면서 "어느 보직이든 제가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뒤에 수비하는 형들 믿고 던지면 몇 이닝이든 제 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