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KIA 타이거즈 왼손 투수 이의리의 주자 상황별 성적을 보면, 만루 위기를 맞았을 때 가장 잘 던진다.
데뷔 후 만루 상황에서 피안타율은 0.154(39타수 6안타)에 그치고, 밀어내기 볼넷도 45명의 타자를 상대해 3개밖에 안 내줬다.
대다수 투수가 만루에 몰리면 압박감에 무너지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만루 위기를 즐기는 이의리의 강심장은 19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0-0으로 맞선 3회 말 안타 2개와 볼넷 1개로 무사 만루에 몰린 이의리는 롯데 클린업 트리오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3번 타자 잭 렉스는 3구 삼진, 4번 타자 전준우와 5번 타자 안치홍은 모두 4구 만에 처리했다.
이날 6-0으로 승리하고 5연패를 끊은 KIA에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경기 후 만난 이의리는 "만루가 되면 조금 많이 간절해지고 집중력도 올라가는 것 같다"고 비결을 밝혔다.
평소에도 그런 긴장감으로 던지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이야기다.
"형들이 평상시에도 그렇게 무사 만루라고 생각하고 던지라는데, 아예 느낌이 달라서 쉽지 않다"며 웃었다.
이날 이의리는 5⅔이닝 101구 3피안타 3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2승(1패)째를 거뒀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3㎞까지 나왔고,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커브 등을 다양하게 던졌다.
아웃 카운트 하나가 부족해서 시즌 첫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내)를 놓친 이의리는 "아쉽긴 했지만, (다음 투수가) 준비된 상황이었다. 제가 그 전에 빨리 끝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으니 다음에는 수월하게 끝낼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이의리는 이번 시즌 앞선 세 차례 등판에서 볼넷을 총 16개 내줬다.
이날은 그보다 적은 3개만을 허용한 그는 오히려 "볼넷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앞으로 열심히 훈련하면 그것에 따른 결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해서 운동에만 집중한다"고 했다.
이날 이의리가 찍은 '왼손' 시속 153㎞도 사실 대단한 강속구다.
그렇지만 시속 160㎞를 돌파한 문동주를 비롯해 김서현(이상 한화 이글스), 안우진(키움 히어로즈) 등 시속 150㎞ 후반대 공을 밥 먹듯 던지는 투수가 줄줄이 등장해 강속구 투수 이의리의 면모는 덜 부각된다.
이의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히려 다른 선수가 저를 보고 그렇게 느낄 것이다. 우진이 형이나 동주나 저보다 월등하게 빠르니까 딱히 신경은 안 쓰인다"며 "대신 왼손 중에는 제가 제일 빠르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