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연합뉴스) 권훈 기자 = "실력은 다 똑같다. 노력하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23일 경남 김해 가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최은우는 무려 9년 동안 무관 신세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호주로 골프 유학을 하러 가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2015년부터 KLPGA투어에 뛰어들었던 최은우는 준우승 한번 말고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년까지 8시즌을 뛰면서 한 번도 상금랭킹 60위 밖으로 밀려 시드를 잃은 적이 없었다.
늘 상금랭킹 30위 밖을 맴돌던 그는 이번이 211번째 출전 대회였다.
안송이(237개 대회)에 이어 첫 우승을 하는데 두 번째로 오래 걸렸다.
최은우는 "호주에서 돌아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적응할 무렵이던 3년 차에 오른손을 다쳐 오랫동안 고생했다"면서 "스트레스도 꽤 받았고 우승없는 데 부담도 많았다"고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는 기대만큼 성적이 나지 않아도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최은우는 "부모님이 강요해서 시작한 골프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했다. 호주로 골프 유학도 내가 원해서 갔다. 골프 치는 게 좋다. 아파서 못 칠 땐 속 상했다"고 말했다.
4타차 공동 4위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최은우는 자신도 우승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선두와 타수 차가 많아서 우승 욕심보다 내 플레이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경기 도중에도 리더보드를 보지 않았다. 17번 홀에서 전광판을 슬쩍 봤는데 내 이름이 위에 있는 걸 알았지만 밑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최은우는 1타차 선두로 맞은 18번 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프린지에 올려놓고서야 제대로 된 순위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투 퍼트면 우승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첫 퍼트를 거리만 맞추자는 마음으로 쳤다"는 게 그의 말이다.
최은우는 우승 원동력으로 겨울에 공을 들인 퍼트 훈련을 꼽았다.
"파퍼트는 곧잘 넣는데 버디 퍼트는 잘 넣지 못했다"는 최은우는 집중 훈련 덕분인지 이번 대회, 특히 최종 라운드에서는 퍼트가 유난히 말을 잘 들었다.
최은우는 "긴장하면 퍼팅 스트로크가 빨라지곤 해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그린이 빠르고 말라 있어서 넣으려고 하기보다는 스피드만 맞추려고 했다. 공격적인 건 아니었다. 생각했던 템포대로 퍼트했다"고 말했다.
이날은 최은우의 부친 최운철 씨의 62번째 생일이다. 최 씨는 딸과 늘 대회 때마다 자동차로 동행하면서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딸에게 먹이며 뒷바라지했다.
최은우는 "매년 이 대회 때는 아빠 생신이었다. 늘 케이크를 사서 숙소에서 조촐한 생신 파티를 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우울하게 상경한 적도 많았다"면서 "오늘은 즐거운 상경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우승 상금으로 우선 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드리겠다. 집에서 마음 졸이며 응원한 어머니께도 선물을 사드리고,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밥도 사겠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또 "올해는 사실 우승 욕심을 내려놓고 매 대회, 매 샷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목표는 오랫동안 재미있게 뛰는 거다. 건강하고 재미있게 치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서도 "초반에 우승해서 시작이 좋다. 많은 대회가 남았으니 다승을 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은우는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동료 선수에게 조언해달라는 요청에 "나도 계속 인내하고 기다렸다. 기회는 온다. 실력은 다 똑같다. 얼마만큼 조금이나마 행운이 더 실리냐에 달렸다"면서 "노력하고 기다리면 기회가 온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