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잠수함 투수 최원준(29)은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꼭 우규민(38·삼성 라이온즈)을 찾는다.
27일 대구에서 만난 최원준은 "규민이 형은 멘털 코치 같은 선배다. 형이 내게 '선발 투수로 뛸 기회가 있을 때 잘해라. 나는 선발로 뛰고 싶어도 이제 늦었다'라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우규민은 26일까지 현역 잠수함 투수 중 최다 출장(711경기), 최다승(79승), 최다 세이브(90개)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홀드는 97개(이상 26일 현재)로 정우영(104홀드·LG 트윈스)에 이은 현역 잠수함 2위다.
'잠수함 선배'의 조언에 최원준은 힘을 얻는다.
잠수함 투수의 무기 중 하나는 '낯섦'이다. 그만큼 잠수함 투수의 수는 많지 않다.
선발 투수로 뛰는 경우는 더 드물다.
2023 KBO리그에서는 최원준과 고영표(kt wiz), 박종훈(SSG 랜더스), 한현희(롯데 자이언츠) 정도다.
이들 사이에는 동지애가 자란다.
최원준도 잠수함 투수들의 동지애를 '동력'으로 삼고 있다.
최근에는 흥미로운 선발 맞대결도 펼쳤다.
최원준은 지난 23일 잠실구장에서 '동국대 3년 선배' 고영표와 선발 맞대결했다.
당시 최원준은 6이닝 6피안타 1실점, 고영표는 7이닝 7피안타 1실점으로 잘 던졌다. 두산과 kt는 12회 연장 혈전 끝에 1-1로 비겼다.
최원준은 "영표 형과 늘 '우리 동국대 출신 잠수함이 선발 맞대결하면 참 재밌겠다'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이뤄졌다. 다행히 나와 영표 형 모두 무탈하게 등판을 마쳤다"고 웃었다.
kt 사령탑은 '잠수함 투수의 교과서' 이강철 감독이다. 이 감독은 152승으로 KBO리그 역대 다승 4위이자, 잠수함 투수 중 1위다. 공교롭게도 이강철 감독도 동국대 출신이다.
최원준은 "이강철 감독님이 상대 더그아웃에 계셔서 맞대결이 더 뜻깊었다"며 "영표 형과 '우리가 더 잘해서, 잠수함 투수들도 오랫동안 선발 투수로 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말하곤 했는데 그런 다짐을 지켜가고 싶다"고 했다.
최원준은 2020년 7월부터 '붙박이 선발'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유희관과 함께 두산 국내 투수 최다 타이인 10승을 거두며 '토종 에이스'로 부상한 최원준은 2021년에는 12승으로 두산 국내 투수 중 가장 많은 승리를 챙겼다.
지난해에는 8승을 수확했다. 10승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최원준은 곽빈과 함께 두산 토종 투수 최다승을 거뒀다.
팬들은 최원준을 '두산 토종 에이스'라고 인정하지만, 최원준은 "예전에도 나는 토종 에이스가 아니었고, 지금은 곽빈이 우리 팀 에이스"라고 손사래 쳤다.
하지만, 두산 토종 투수 중 선발 경험이 가장 많은 선수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실제 최원준은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한다.
올해 처음 두산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한 최승용은 공개적으로 "최원준 선배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최원준은 "스프링캠프 때 최승용이 선발 경쟁을 펼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승용이에게 '너는 가진 게 많다. 나이도 어리니 기회도 자주 찾아올 것이다. 너무 쫓기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승용이가 예전에는 내 조언을 귀담아듣더니, 이제는 조금 변한 것 같다"고 농담한 최원준은 "승용이 등 좋은 후배들이 올라오면서 내 자리도 위협받고 있지만, 후배들이 잘되면 그만큼 우리 팀이 강해진다. 두산 투수들 모두가 잘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최원준은 "두산 선발 투수 중에 나만 승리가 없다. 선발 자리가 위태롭다"고 몸을 낮췄지만, 최원준은 올해 등판한 4경기에서 모두 5이닝을 넘기고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3차례 달성했다. 불운 탓에 승리 없이 1패만 당했지만, 평균자책점은 2.88로 매우 좋다.
"저는 늘 배우는 입장"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미 최원준은 후배들의 멘토가 됐다.
이제는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갑상샘암 수술을 받고 일어난 과거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성실함과 실력을 갖춘 최원준의 현재 모습만 봐도 배울 게 수십 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