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A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의 엄원상과 주민규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지켜보는 가운데 제대로 '무력시위'를 펼쳤다.
10일 울산이 제주 유나이티드를 5-1로 대파한 울산문수경기장에는 클린스만 감독이 현장을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승리의 선봉에 선 선수들이 엄원상과 주민규였다.
두 선수는 클린스만 감독이 뽑은 6월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대비 소집 훈련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주민규는 최근 황의조(서울)와 지난해 K리그1 득점왕(17골) 조규성(전북)의 폼이 좋지 못하면서 클린스만호 승선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황의조와 조규성을 재신임했고, 주민규는 '생애 첫 태극마크' 달성에 또 실패했다.
지난 6일 수원FC와 원정 경기에서 시즌 9호 골을 터뜨린 후 "기대한 만큼 실망감도 컸다"고 한 주민규는 이날도 '원더골'을 터뜨리며 남은 아쉬움을 털어내려 했다.
후반 25분 오른 측면에서 넘어온 바코의 크로스를 오른발로 받아낸 주민규가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그림 같은 터닝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과 3차전 독일 대표팀의 공격수로 나선 클린스만 감독이 환상적인 터닝슛으로 만든 득점과 유사한 장면이었다.
자신의 현역 시절처럼 스트라이커로서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여준 주민규에게 감탄했는지 득점이 이뤄진 순간 클린스만 감독이 활짝 웃는 장면이 중계에 포착되기도 했다.
더불어 주민규는 지난 시즌까지 뛴 친정팀 제주를 상대로 10호 골을 넣어 K리그 역사에 자신의 이름도 새겼다.
2021년(22골), 2022년(17골)에 이어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한 것이다.
두 자릿수 득점은 '간판 골잡이'의 상징과도 같은 훈장으로, K리그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기록이다.
이동국(10시즌), 데얀(7시즌), 우성용, 몰리나, 주니오(이상 4시즌)에 이어 역대 6번째다. 토종 스트라이커 중에는 세 번째다.
엄원상은 한술 더 떠 혼자서 3골을 만들어내며 클린스만 감독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엄원상은 클린스만호가 아닌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 6월 A매치 휴식기에 친선 경기를 치르러 중국으로 향한다.
이는 1999년생인 만큼 연령 제한이 있는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더 필요한 자원이라는 배경도 작용했겠지만, 클린스만 감독에게 '꼭 필요한 선수'라는 인상을 주지 못한 여파도 있을 터다.
실제로 2001년생 이강인(마요르카), 1999년생 홍현석(헨트) 등 2022-2023시즌 유럽 무대에서 제 기량을 보여준 다른 2선 자원들이 클린스만호에 무사히 승선한 점에 비춰보면 그렇다.
이 경기 전까지 17경기에 출전, 2골 2도움에 그치며 부진을 거듭한 엄원상은 전반 29분 골키퍼로 향하는 패스를 낚아채다가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팀에 선제골 기회를 안겼다.
이어 후반 7분에는 정확한 크로스로 아타루의 그림 같은 다이빙 헤딩을 어시스트했고, 1분 후에는 주민규 못지않은 원더골을 만들어내며 일찍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하프라인 아래 지점에서 드리블을 시작한 엄원상은 자신을 저지하러 나온 임채민을 가속해 벗겨낸 후 단숨에 문전까지 전진했다.
이어 김동준 골키퍼가 슈팅 각도를 좁히려 전진하자, 반대편 골대로 공을 띄워 보내며 '원맨쇼'를 마무리했다.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를 선보인 엄원상은 울산의 첫 3골에 모두 관여하며 클린스만 감독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