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홍석 이의진 기자 = 한국 축구 사상 처음으로 열릴 '인종차별 상벌위원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가해 선수들에게 내려질 징계 수위에 관심이 크게 쏠린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K리그1 울산 현대 선수들이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태국 선수 사살락 하이프라콘을 겨냥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사건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22일 오후 2시에 열 예정이다.
SNS에 등장한 선수 이명재, 이규성, 정승현, 박용우 4명과 팀 매니저가 상벌위 출석한다.
1983년 출범한 K리그에서 인종차별과 관련해 상벌위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프로연맹 규정에 따르면 인종차별적 언동을 한 선수는 최고 10경기 이상의 출장정지, 1천만원 이상의 제재금 부과를 받을 수 있다.
울산이 리그 선두를 달리는 팀이어서 가해 선수들의 징계 수위에 울산뿐 아니라 모든 구단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에서는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상벌위원들은 해외 사례까지 검토해 가며 징계 수위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일 축구계에 따르면 인종차별에 민감한 분위기가 일찍부터 형성된 유럽에서도 관중이 아닌 선수가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돼 징계에까지 이르게 된 사례가 많지는 않다.
선수가 가해자인 사건 대부분은 그라운드에서 격렬하게 경기를 치르던 중 발생한 경우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뛰던 2011년, 그의 팀 동료이자 절친이던 파트리스 에브라가 당시 리버풀 소속이던 루이스 수아레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수아레스가 에브라에게 '네그리토(작고 검은 남자)'라고 부른 게 문제가 됐고,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8경기 출전정지에 4만 파운드(약 6천600만원) 제재금의 징계를 내렸다.
같은 해 EPL 첼시에서 뛰던 존 테리는 안톤 퍼디낸드를 '검둥이'라고 불렀다가 4경기 출전정지와 벌금 22만 파운드(약 3억6천만원) 징계를 받기도 했다.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에서는 2019년 리즈 유나이티드 골키퍼 키코 카시야스가 찰턴의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공격수 조너선 레코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해 8경기 출전정지에 벌금 6만 파운드(약 9천8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유럽 다른 나라 리그에서도 선수가 인종차별 가해를 한 사건은 있었다.
2007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도르트문트의 로만 바이덴펠러가 샬케에서 뛰던 가나 출신의 독일 국가대표 공격수 게랄트 아자모아를 '흑돼지'라고 불렀다가 3경기 출전정지를 당하고 1만 유로(약 1천400만원)를 벌금으로 냈다.
경기장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사례를 보면 워낙 양태가 천차만별이어서 출전정지 징계 수위의 기준을 대략적으로라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거론할 수 있는 부분은 잉글랜드 축구계가 다른 나라보다는 인종차별 행위에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 정도다.
특히, 이번 '울산 인종차별 사건'처럼 SNS를 통해 가해 행위를 한 경우는 유럽에서도 희소해 판단 기준을 잡기가 더 어렵다.
2011년 테리의 인종차별 사건과 관련해 안톤의 형인 리오가 트위터에서 첼시의 흑인 수비수 애슐리 콜에게 '초코 아이스'라고 불렀다가 문제가 됐다.
퍼디낸드는 콜이 테리를 두둔하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차원에서 이런 트윗을 한 것이었지만, 엄연한 인종차별 발언이라는 지적이 이어졌고, 결국 4만5천 파운드(약 7천3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이때 출전정지 징계는 병과되지 않았다.
2019년에는 맨체스터 시티의 베르나르두 실바가 동료 뱅자맹 멘디를 두고 트위터에서 '장난'을 쳤다가 혼쭐이 났다.
그는 흑인인 멘디의 어릴 적 사진과 짙은 갈색인 스페인의 과자 브랜드 캐릭터 사진을 함께 올리고서 '누군지 맞춰보라'고 적었다.
실바는 1경기 출전정지와 벌금 5만 파운드(약 8천2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2020년에는 손흥민(토트넘)의 팀 동료이던 델리 알리가 공항에서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시아인과 손 세정제를 번갈아 보여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언급하는 게시물을 SNS에 올렸다가 1경기 출전정지와 5만 파운드 징계를 받았다.
출전정지 징계의 수위가 높았던 경우도 있다.
2021년 맨유에서 뛰던 에딘손 카바니가 SNS에서 자신을 응원하는 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를 '네그리토'라고 불렀다가 3경기 출전정지와 10만 파운드(약 1억6천400만원)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
이번 울산 사건의 경우 '여러 명'의 선수들이 외국인 선수 '한 명'을 겨냥해 가해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유럽의 SNS 인종차별 사례들보다는 '죄질'이 안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프로연맹이 'K리그 세계화'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온 가운데 태국 팬들이 이번 사건의 추이를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는 점도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데에 일정 부분은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울산 구단이 비교적 빠르게 사태 수습에 나선 점은 참작될 만한 요소다.
울산은 문제의 SNS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팬들의 비판이 불거진 바로 다음 날 사과문을 게시했다.
홍명보 감독은 축구인 골프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물의에 대해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인종차별은 축구를 떠나 세계적인 문제다. 분명히 없어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