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연합뉴스) 권훈 기자 = 21일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K텔레콤 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백석현은 대회 나흘 동안 볼 대신 홀을 보고 퍼트하는 '노룩(no look) 퍼트'로 화제를 모았다.
첫날 '노룩 퍼트'로 보기 없이 9개의 버디를 잡아내며 선두에 나선 백석현은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고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따냈다.
최종 라운드 2, 3번 홀에서 그린을 놓친 뒤 까다로운 파퍼트를 모두 '노룩 퍼트'로 수습해 우승의 기틀을 닦았다.
백석현은 "올해 들어 퍼트가 너무 안 돼 이번 대회에서 길이가 긴 브룸스틱 퍼터를 쓰려고 가져왔는데 규정에 맞지 않다고 해서 쓰지 못했다"면서 "대회 개막 하루 전날 연습 그린에서 볼 대신 홀을 보고 퍼트해봤더니 잘 됐다. 그래서 1라운드에서 시도해보고 결과가 좋아서 최종 라운드까지 했다"고 밝혔다.
그는 4m가 넘거나 많이 휘는 라인, 내리막 퍼트 때는 '노룩 퍼트'를 하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노룩 퍼트'는 이번 대회 한 번뿐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임시방편이었다"라고 말한 백석현은 다음 대회부터는 원래 쓰려던 블룸스틱 퍼터를 들고 나가서 전처럼 볼을 보고 퍼트하겠다고 말했다.
백석현은 이번 우승으로 2019년 한때 140㎏가 넘던 체중을 줄인 사연도 소환했다,
"살을 빼기로 마음먹고선 석 달 동안 탄수화물과 염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았다"는 그는 8개월 만에 62㎏를 감량했다고 밝혔다.
지금은 100㎏에 조금 미치지 않는다고 밝힌 그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습관 때문에 체중 관리가 쉽지 않다"고 웃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태국으로 골프 유학을 갔다가 16년 동안 살게 된 그는 태국에서 프로 선수가 됐고, 아시안프로골프투어에서 주로 활동해 국내 팬들에게는 낯설다.
그동안 55번 국내 대회에 출전했지만, 두드러진 성적이 없었던 백석현은 "그동안 내가 낯설었던 팬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어서 기분 좋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아내와 장인, 장모한테 좋은 모습 보이고 싶었다"라며 "1, 2라운드에서 멋진 모습 보여줘 기뻤는데 우승까지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골프가 안 되니까 아내가 엄청나게 내 눈치를 봤다. 마음이 아팠다. 정말 고맙다. 상금은 와이프 주겠다. 그래도 나도 사고 싶은 거 하나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웃음을 지었다.
1타 뒤진 채 최종 라운드 동반 플레이에 나선 이태훈(캐나다)의 추격을 1타차로 따돌린 백석현은 "샷이 워낙 좋아서 자신감이 넘쳤다. 지키려다 망가진 적 많아서 공격적으로 치자고 마음먹었다. 후회 없이 치자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순위를 보지 않았다. 16번 홀 끝나고 2타차 선두라는 걸 알았더니 압박감이 왔다"면서 "단 한 번도 우승을 확신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백석현은 2타차 선두로 맞은 18번 홀(파4)에서 티샷을 페널티 구역에 보냈고, 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마저 그린 옆 벙커에 빠트려 역전패 위기에 몰렸다.
벙커샷으로 홀 50㎝에 붙여 1타차 우승을 거둔 그는 "내 인생 최고의 샷이었다"고 말했다.
우승을 결정짓는 보기 퍼트를 할 때는 "볼도, 컵도 보지 않았다. 내 손만 봤다. 우승 퍼트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퍼트에만 집중했다"는 그는 "넣고 나서는 머리가 하얘졌다. 우승한 게 실감이 안 났다"고 돌아봤다.
태국 등에서 골프를 했던 그는 스트롱 그립을 위크 그립으로 고치고, 구질도 드로에서 페이드로 바꾸느라 애를 먹었다. 특히 한국 잔디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우승도 평소 좋아하는 벤트 잔디여서 가능했다는 그는 "4년 시드 확보로 한국 잔디에 적응할 시간을 벌었다. 스윙 등 고치고 싶은 부분을 고칠 여유가 생겼다"면서 "1승에 그치지 않고 2, 3승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