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상' 슬픔 딛고 여자배구 정관장 연패 탈출 앞장선 자네테(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오늘은 자네테의 승리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대단한 정신력으로 경기를 치렀습니다.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자 프로배구 정관장의 사령탑인 고희진 감독은 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페퍼저축은행과 홈경기에서 세트 점수 3-1 승리를 지휘한 뒤 외국인 거포 엘리사 자네테(29·등록명 자네테)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자네테가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지난 13일 급히 모국인 이탈리아로 돌아갔다가 귀국한 지 하루 만에 경기에 출전해 값진 승리를 견인했기 때문이다.
전날 밤 입국한 자네테의 경기 출전은 불투명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가시지 않은 상태인 데다 15시간여의 장시간 비행에 따른 시차 적응과 여독 해소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네테는 출전을 자청했고, 팀의 주포로 23점을 뽑고 공격 성공률 44.9%를 기록하며 값진 승리를 선물했다.
자네테는 1세트에는 슬픔과 피로가 겹친 탓에 3득점에 그쳤지만, 2세트에는 11득점에 성공률 68.8%의 순도 높은 공격으로 세트 점수 25-21 승리를 이끌었다.
세트 점수 2-1로 추격당한 4세트에도 알토란 같은 4점을 보태며 팀이 2연패 사슬을 끊는 데 앞장섰다.
정관장은 자네테가 빠졌던 지난 16일 흥국생명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면서 2연패 중이었다.
특히 상대 팀은 4년 연속 최하위 부진을 딛고 올 시즌 2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는 페퍼저축은행이어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자네테가 주포 역할을 해주고 왼쪽 날개를 책임진 이선우도 18득점으로 활약하면서 승점 3을 챙길 수 있었다.
자네테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기량이 검증된 아포짓 스파이커다.
그는 2011-2012시즌 이탈리아 클럽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이탈리아 1, 2부 리그에서 줄곧 뛰었고, 지난 시즌에는 푸투라 지오바니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다.
키 193㎝의 좋은 신체 조건을 가진 데다 배구 지능(VQ)이 높고 어려운 조건의 하이볼 처리 능력도 뛰어나다.
그는 지난 5월 열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때 5순위 지명권을 얻은 정관장의 지명을 받았다.
당시 지명 후 그는 "정말 행복하고 감정이 벅차오른다. 이탈리아 밖에서 뛰는 건 처음이다. V리그라는 새로운 환경에 기대가 크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관장의 시즌 초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주전 세터 염혜선이 무릎 수술 후 여전히 재활 중이고, 아시아쿼터 위파위 시통(등록명 위파위) 마저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 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자네티의 공격 부담이 커졌다. 자네티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최서현이 신예 세터여서 볼 컨트롤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다.
악조건 속에 고군분투하는 그는 부친상 슬픔을 딛고 값진 승리를 책임졌다.
그는 경기 후 "승리해 기쁘다. 팀으로서 이겼다.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서 가능했다"면서 "아버지를 위해 뛰었다. 하늘에서도 경기에 뛰고 잘하길 바랐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