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
3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한국 이정후가 1타점 2루타를 친 뒤 환호하고 있다. 2023.3.10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저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09년 WBC 준우승 등 영광의 순간을 보며 자랐는데, 국가대표로는 아쉬운 성적표만 받아서 마음이 무척 무겁습니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과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프로야구가 딛고 올라설 도약대이기도 하다.
23일 서울시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이정후는 "지금이 한국 야구의 바닥이라고 생각한다. 실망하셨을 팬들에게 한국 야구가 다시 도약하는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며 "도쿄올림픽 4위, WBC 1라운드 탈락 등 아픈 경험을 했지만, 이런 경험도 내게는 소중하다. 2026년, 2030년, 2034년까지 WBC 대표팀으로 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의욕적으로 말했다.
이정후는 2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2023 WBC 결승전을 생중계로 봤다.
결승전에서 일본은 미국을 3-2로 꺾었다.
투타 겸업을 하는 오타니 쇼헤이(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일본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미국 대표팀 주장 마이크 트라우트(에인절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이, 이번 대회의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였다.
이정후는 "오타니는 같은 야구선수가 봐도 정말 멋진 선수"라며 "실력은 물론이고, 경기 전후 인터뷰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멋졌다"고 떠올렸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전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이 동력이 돼 우리가 우승할 수 있었다"는 오타니의 인터뷰에 이정후는 감동도 받았다.
이정후는 "그 정도 실력, 인품을 갖춘 선수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도 많은 걸 느꼈다"며 "나도 응원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도쿄=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본선 1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
3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한국 이정후가 1타점 2루타를 치고 있다. 2023.3.10 [email protected]
2023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정후는 "우리 대표팀 선후배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이렇게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고 곱씹으면서도 "한국 야구가 바닥을 찍었다. 한국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보답하는 건, 다시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한 뒤, 오랜 기간 다시 도약하고자 애썼고 마침내 세계 정상에 올랐다. 그런 시스템을 우리도 갖춰야 한다"며 "나도 이번 대회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독한 마음으로 좌절감을 덮었다. 도쿄올림픽, 2023 WBC에서는 실패했지만 나도 은퇴할 때쯤에는 '한국 야구의 명장면'에 등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바랐다.
한국 대표팀은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202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선수이자 '예비 빅리거' 이정후는 14타수 6안타(타율 0.429)로 활약했다.
이정후는 "WBC는 개인 기록이 중요하지 않은 대회다. 이번 대회에서는 나도 실패한 것"이라고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이번 대회를 통해 느낀 게 많다.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고 전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이정후는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 도전한다.
이정후는 "우리 팀의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선배, 일본의 오타니,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요시다 마사타카(보스턴 레드삭스)가 빅리거 신분으로 대표팀에 합류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며 "나도 다음 2026년 WBC에는 '코리안 빅리거'로 출전하고 싶다. 2030년, 2034년에도 빅리거로 WBC에 출전하는 게 내 새로운 목표"라고 말했다.
이정후의 시선은 '경기장 밖'으로도 향한다.
지난해 정규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이정후는 "어린 팬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매체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KBO도 SNS를 활용해 '신규 팬 유입'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23일에도 이정후는 "일단 우리가 응원받을만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나부터 그래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KBO와 각 구단 SNS가 새로운 팬을 유입할 정도로 활성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사무국 SNS, 각 구단 SNS를 보면 경기가 끝나자마자 1분 이내의 경기 하이라이트를 내보낸다. 메이저리그에서 나온 유쾌한 장면도 SNS에서 볼 수 있다"며 "베이징올림픽을 보며 야구에 빠진 세대는 내 또래가 마지막이다. 아직 야구를 접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3시간짜리 경기'를 모두 보라고 할 수 없다. SNS의 짧은 영상으로 신규 팬들을 끌어들이는 게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야구는 기량면으로도, 흥행 면으로도 재도약해야 할 때다.
이정후는 선수로서의 자신을 반성하며, 행정적인 노력도 요청했다.
'행동하는 젊은 스타' 이정후의 목소리가 멀리 퍼지면, 하향 곡선을 긋는 한국야구도 다시 반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