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늦게 핀 꽃이 오래 간다잖아요."
프로축구 K리그1 강원FC의 정경호(44) 감독은 사령탑으로는 이제 첫걸음을 떼는 초보다. 하지만 그는 코치 생활만 10여년을 하며 전략가로 내공을 쌓은 '준비된 감독'이다.
선수 시절 K리그 통산 238경기에 출전해 30골 14도움을 기록하고 국가대표로도 41경기(6골)를 뛴 정 감독은 2014년 모교인 울산대 코치로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2016년부터 K리그의 성남FC와 상주 상무(현 김천 상무) 코치에 이어 다시 성남에서 수석코치와 감독대행을 거친 뒤 2023년부터는 강원의 수석코치로 일하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강원 지휘봉을 잡았다.
이 사이 울산대를 이끌었던 고(故) 유상철 감독을 시작으로 김학범 현 제주SK FC 감독, 김태완 현 천안시티FC 감독, 김남일 전 성남 감독, 윤정환 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까지 다섯 명의 감독을 보좌했다.
강원 삼척 출신의 정 감독은 이제 고향 팀을 이끌고 정식 사령탑으로 첫 도전에 나선다.
정 감독은 2025시즌 준비를 위해 강원 선수단과 함께 1월 한 달간 튀르키예에서 전지훈련을 한 뒤 경남 남해에서 담금질을 이어가는 중이다.
5일 남해에서 만난 정 감독은 코치, 감독대행 등으로 보낸 지난 10여년이 '감독 정경호'로 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감독이 된 지금, 크게 들뜨지 않고 감독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방향성을 명확하게 잡게 됐다"며 "설익었던 철학과 경기 모델 등을 업그레이드하고 선수들과의 소통 등 여러 부분에서도 내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물론 흔들린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생인 정 감독은 "사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선배나 동기는 물론 이제 후배들도 감독하는데 조바심이 좀 났던 시기도 있었다. '나도 준비돼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는 준비가 안 됐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감독이 됐을 때 필요한 명확한 철학과 경기 모델 등을 갖췄다고 생각했지만 한참 멀었던 시절이었다.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고 있던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때 감독을 했더라면 아마 실패했을 것"이라는 게 지금 정 감독의 판단이다.
정 감독은 "물론 지금도 실패냐, 성공이냐는 이제 해봐야 알겠지만, 그때보다는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은 자신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늦게 핀 꽃이 오래 간다'고 그러길래 그때는 '일찍 꽃을 피워 오래 가면 되지'라는 생각도 했다"면서 "하지만 결국 일찍 핀 꽃은 늦게 핀 꽃과 달리 날씨를 비롯한 여러 변화를 겪어보지 못해 일찍 지는 것 아니겠나.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라고 코치로서의 지난 시간이 앞으로의 감독 생활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경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가 생기고, 그 노하우는 매뉴얼이 되고, 그 매뉴얼은 결국 철학이 된다"고 말을 이어간 정 감독은 "나는 그 단계를 잘 거친 지도자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큰 실패는 하지 않을 거라는, 확 무너지는 팀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난해 강원은 창단 이후 최고 성적인 K리그1 준우승을 차지했다.
성적에 대한 구단 안팎의 기대치는 높아지고, 지휘봉을 이어받은 감독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수석코치로서 윤정환 전 감독을 도와 강원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었던 정 감독은 "작년에 준우승했다고 올해는 우승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런 정도의 팀은 아니다"라고 냉정하게 짚었다.
그러고는 "(준우승은 했지만) 강원이 기복이 좀 심했다. 기복을 줄이면서 좀 더 단단한 팀, 조직적으로 잘 어우러지는 팀을 만들어 팬들이 좋아하는, 그리고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축구를 하는 게 내 목표"라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