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카바니가 9살의 카바니에게 쓰는 편지

자유게시판

성인 카바니가 9살의 카바니에게 쓰는 편지

손종화 0 228 2021.06.24 03:56

9살의 에딘손에게,
 
나는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펠라도'라고 놀려대는 아이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단다. '빡빡이'라는 뜻이지.
 
어렸을 때, 너에겐 머리카락이 별로 없었단다. 천천히 자라기 시작했지. 정말 뭐같은 일이지!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단다. 그래서 넌 언제나 펠라도였지.
 
앞으로 20년 동안, 축구가 많은 면에서 네 인생을 바꿀 거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어서 기쁘구나.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을 거야. 축구 덕분에 네 별명도 사라질 거란다. 
 
음,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라는 선수가 있어. 넌 톰과 제리밖에 안 보니까 아직 모르겠지. 네 형인 난도가 먼저 바티스투타에게 감명을 받고 머리를 기르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엄마의 제품도 빌려쓰기 시작할 거고. 결국, 네 형은 바티골과 똑같은 모습을 갖추게 될거야. 네 형이 긴 머리를 신발끈으로 묶고 축구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넌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게 될거야.
 
결국, 너도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게 된단다. "저 이제 머리 안 자를래요."
 
집 밖에서 공을 차고 다니는 것이 너의 삶이 될 거야. 이게 남미의 삶이지. 넌 다른 거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집에 있어봐야 재밌는 것도 없는 걸. 플레이스테이션도 없고, 큰 TV도 없고, 심지어 뜨거운 물로 샤워도 못하잖아. 난방 장치가 없어서, 겨울에는 담요를 네 겹으로 덮어야 했지. 목욕을 하고 싶을 때는, 양동이에 물을 담아 난로로 데워야 했어. 찬물과 뜨거운물 비율을 잘 맞추는게 아주 중요해. 목욕을 하다보면, 연금술사가 된 기분이었지.
 
하지만 그것도 너에겐 사치였지. 처음 살았던 집 기억나? 화장실도 없었던 집? 볼일이 급할 땐, 항상 밖에 나가서 작은 헛간까지 걸어가야 했지.
 
근데 비밀 하나 말해줄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기억은 아냐. 오히려 옛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용기가 생겨. 아름다운 추억이야.
 
집에 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거라. 계속 햇볕 아래서 너의 삶을 살아, 펠라도.
 
 
 
방에 있는 벽에다가 축구 선수 포스터들은 붙여봐야 뭐해? 2~3년마다 부모님 직업이 바뀌거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되면 이사를 가야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좋은게 뭔지 아니? 어딜 가든지 간에, 흙운동장 정도는 있단 말이지. 항상 공도 찾을 수 있고 말이야. 그 어떤 건물주도 너에게 그걸 뺏어갈 수는 없어.
 
지금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내 기억이 맞다면, 아이스크림 골이야.
 
아이스크림 골은 마법이지. PSG 관계자에게 아이스크림 골에 대해 말해봐야겠어. 정말 천재적인 동기부여 방법이었지. 살토의 유스 리그 관계자가 고안해낸 아이디어였어. 이 6살 꼬맹이들을 어떻게 경기 스코어에 관계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게 하지?
 
정답은, 마지막 골을 넣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거였지.
 
스코어가 8:1이어도 상관 없어. 마지막 골을 넣기 위한 경쟁이었지. 내가 아이스크림 골을 넣었을 때 코치님이 종료 휘슬을 부는 걸 들을 때면...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지. 정말 순수한 기쁨이었어. 초콜릿 맛을 고를까? 미키 마우스 아이스크림을 고를까? 그 날 하루는 내가 왕이었어.
 
 
 
넌 수도에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야. 그건 확실하지. 몬테비데오의 아이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 넌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아직 모르지. 아이들이 차를 타고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잔디밭에서 공을 차고 있어. 
 
살토에선 완전히 다르지. 모든 아이들이 다들 맨발로 뛰어다니길 원해.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시작해도, 전반전이 끝날 때쯤 되면 신발이 다 찢어져서 결국 맨발이 되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직 발 아래에 흙의 느낌이 전해져. 아직 공을 쫓아다니며, 아이스크림 골을 넣으려고 애쓰던 그때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어.
 
넌 그 기분과 평생 함께하게 될 거야. 너는 남미에서, 우루과이에서, 살토에서 태어났으니까. 너는 다른 방식으로 축구를 배우게 될 거야. 우루과이인의 축복이자 저주는, 편히 쉬는 법을 모른다는 거지. 그게 우리 축구의 역사고, 우리 나라의 역사야. 우루과이인이 축구 유니폼을 입으면, 우리 역사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지.
 
우린 언제나 전진, 전진, 또 전진이야. 그리고 넌 전진하게 될 거야.
 
펠라도, 너의 꿈이 뭐니?
 
지금 나는 그 시절의 꿈이 잘 기억이 안 나네. 시간이 많이 지났어.
 
네 형 난도처럼 몬테비데오에서 뛰고 싶니? 넌 그렇게 될 거야. 마치 챔피언스 리그에 간 것 같은 기분일걸.
 
유럽에서 뛰고 싶니? 그것도 이뤄질 거야. 네 가족의 인생을 바꿀만큼 많은 돈도 벌게 될 거야.
 
대표팀에서 뛰고 싶니? 그것도 이뤄질 거야.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을 모두 흘리게 될 거야.
 
월드컵에서 뛰고 싶니? (이건 스포일러 안 할게. 2010년은 미친 해가 될 거라고만 기억하렴!)
 
돈 많이 벌고 비싼 차 타면서 고급 호텔에서 자는게 꿈이니? 펠라도, 그거 다 할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이건 말해줘야겠다. 그렇다고 네가 꼭 행복해진다는 뜻은 아니야.
 
9살의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31살의 나는 몹시 그리워한단다.
 
따뜻한 물로 샤워도 못하고, 주머니에 지폐 한 장도 없었지만. 게다가 넌 아직 멋진 머리카락도 없지!
 
하지만 넌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지.
 
너에겐 자유가 있어.
 
어릴 때, 네가 갖고 있는 열정과 패기는 어른에게는 사라진 것이란다. 나이가 들면서 그 느낌을 붙잡으려 애쓰지만, 손에서 빠져나가지. 우리는 너무 많은 책임과 부담을 갖게 돼. 바깥이 아닌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지.
 
31살의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
 
호텔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훈련장으로 가고, 다시 훈련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지.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게 돼.
 
어떻게 보면, 네가 꾸던 꿈 속의 삶이지. 하지만 다르게 보면, 너는 네 꿈 속에 갇혀버린 거야. 그냥 내키는대로 밖에 나가서 햇볕을 즐길 수는 없어. 신발을 벗고 흙바닥에서 즐겁게 공을 찰 수도 없지. 네 인생을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날거야. 그건 피할 수 없어.
 
어릴 때는, 가장 많은 걸 소유한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크게 되면, 너도 인생을 사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프로 선수가 되면, 너는 원했던 걸 다 가질 수 있어. 넌 그 사실에 정말, 정말 감사해야 할 거야. 하지만 솔직하게 말할게, 펠라도. 네가 완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어. 그 자유는 90분 정도 지속될 거야. 운이 좋다면.
 
축구화를 신을 때... 그곳이 살토의 흙바닥이든, 나폴리의 잔디구장이든, 수 백만 명이 지켜보는 월드컵 무대이든 상관 없어. 난 네 아버지의 말을 네가 기억하길 바라.
 
경기에 나가기 전에, 아버지가 항상 뭐라고 하셨지?
 
너도 알고 있잖아.
 
"저 하얀 선을 넘어서 운동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존재하는 건 축구밖에 없다. 선 밖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선 안에 있는 널 도와주지 않는다. 축구 외에 다른 건 이 순간 존재하지 않아."
 
그 말을 기억하면, 그리고 진심으로 그 말을 믿으면, 부담감이 엄청난 순간에도, 수 백만 명 앞에서 경기를 하더라도 상관 없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넌 신발도 신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거야.
 
맨발 아래로 흙의 촉감이 다시 느껴질 거야.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심장 박동을 느끼며, 공을 쫓아다니게 될 거야. 마치 세계 최고의 트로피를 위해 뛰는 것처럼.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뛰는 것처럼.
 

 
진심을 담아,
 
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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